
기업가 이수만: ‘기획’의 산업화를 시도한 사람
이수만은 한국 대중음악을 ‘좋은 노래를 만드는 일’에서 ‘산업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로 확장시키려 한 인물로 자주 거론된다. 그는 단순히 한두 팀의 성공에 기대지 않고, 캐스팅과 트레이닝, 프로듀싱, 마케팅까지 이어지는 전 과정을 표준화하고 반복 가능한 모델로 만들려 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K-팝의 핵심 경쟁력은 특정 곡이나 특정 스타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스타를 만들어 내는 생산 체계에 있다.
기업가정신의 첫 번째 핵심은 “재현 가능성”이다. 어떤 산업이든 한 번의 성공은 우연이 될 수 있지만, 같은 성공을 여러 번 만들어 내면 그것은 구조가 된다. 이수만이 강조해 온 CT(Culture Technology, 컬처 테크놀로지)는 바로 이 구조를 설명하는 언어로 읽힌다. 다시 말해 문화도 기술처럼 프로세스화할 수 있고, 전수 가능하게 만들 수 있으며, 시대 변화에 맞춰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시장 정의”다. 국내 시장에 머물지 않고 처음부터 글로벌을 전제로 기획을 조정해 온 점이 반복해서 언급된다. 언어, 멤버 구성, 콘셉트, 유통 채널까지 해외 팬을 상정해 설계하는 방식은 오늘날에는 흔해졌지만, 초기에 이를 밀어붙인 것은 높은 리스크였다. 기업가 관점에서 이는 “상대적으로 작은 내수의 한계를 인정하고, 처음부터 TAM(총시장)을 크게 잡는 전략”에 해당한다.
CT와 확장 전략: IP를 ‘콘텐츠’가 아니라 ‘플랫폼’으로 본 시각
이수만의 전략을 더 멀리에서 보면, 그는 콘텐츠를 단발성 히트 상품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축적되는 IP(지식재산)로 다뤘다. IP는 공연, 음반, 굿즈, 광고, 2차 창작, 협업 등으로 확장되며, 이는 곧 사업의 현금흐름 안정성과도 연결된다. 특히 팬덤 비즈니스는 일반 소비재와 달리 “반복 구매”와 “커뮤니티 기반 확산”이 강하다는 점에서, 기획사가 IP를 다루는 방식이 곧 기업의 밸류에이션과 직결되기 쉽다.
다만 기업가정신은 성과만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빠르게 성장한 조직이 겪는 거버넌스 이슈, 이해관계 충돌, 의사결정 구조의 투명성 같은 문제는 어떤 산업에서도 반복된다. SM을 둘러싼 지배구조 갈등과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이수만의 역할과 책임을 두고 다양한 평가가 뒤따랐다. 시장은 “창업자의 창의성과 속도”를 높게 평가하면서도, “지속 가능한 조직 운영 체계”를 요구한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로 읽을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얻을 수 있는 사업적 교훈은 분명하다. 첫째, 스타트업과 창업 기업의 초반에는 ‘압도적 방향성’이 성장을 만든다. 둘째, 일정 규모를 넘으면 ‘검증 가능한 시스템’과 ‘설명 가능한 의사결정’이 신뢰를 만든다. 셋째, 글로벌 사업으로 갈수록 파트너와 투자자는 숫자뿐 아니라 구조를 본다. 결국 장기 생존은 “창업자 1인의 역량”이 아니라 “조직의 운영 체계”로 증명된다.
A2O와 AI 시대의 기업가정신: 다음 스테이지를 여는 질문
이수만은 SM을 떠난 이후 새로운 법인과 프로젝트를 통해 ‘다음 챕터’를 언급해 왔다. 보도에 따르면 그가 참여하는 A2O 엔터테인먼트는 2024년 말 첫 아티스트를 공개하며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AI와 기술 융합, 글로벌 팬의 변화에 대한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내고 있다.
특히 최근 인터뷰와 행사 발언에서 AI를 “위협”이 아니라 “다음 단계의 도구”로 바라보는 관점이 소개된다. 팬 경험이 더 개인화되고, 콘텐츠 생산과 유통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인간의 창의성’과 ‘기획의 설계력’이 더 중요해진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말하는 기획은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기술을 어떤 이야기 구조와 커뮤니티 흐름에 담아낼지 결정하는 능력이다.
기업가로서 그의 다음 과제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나는 “새로운 조직이 어떤 방식으로 신뢰를 확보할 것인가”다. 창업자의 명성만으로는 장기 사업이 굴러가지 않는다. 계약, 파트너십, 인재, 재무, 법적 리스크까지 시스템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다른 하나는 “AI 시대의 CT를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가”다. 과거의 CT가 캐스팅, 트레이닝, 프로듀싱, 마케팅을 정교화했다면, 이제는 데이터와 알고리즘, 생성형 AI, 인터랙티브 콘텐츠까지 포함하는 넓은 스택이 된다.
결론적으로 이수만의 기업가정신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문화’라는 감성 산업을 ‘기술’처럼 설계하고 확장하려 했던 시도다. 그 과정에서 성공과 논란이 함께 존재하지만, 산업을 만든 사람들의 공통점은 늘 비슷하다. 시장이 없는 곳에 시장을 상상했고, 제품이 아닌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다음 세대가 이어서 개선할 수 있는 틀을 남기려 했다. 사업을 하는 입장이라면, 화려한 결과보다 더 오래 남는 질문을 붙잡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지금, 한 번의 히트를 만드는가, 아니면 반복 가능한 구조를 만드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