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에고 마라도나는 축구 역사상 가장 화려하면서도 논란이 많았던 선수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아르헨티나 대표팀과 이탈리아의 나폴리에서 전설적인 활약을 펼치며 축구 팬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동시에 그라운드 안팎에서 많은 논란과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마라도나의 화려한 커리어, 기념비적인 업적, 그리고 그를 둘러싼 논란의 순간들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겠습니다.
1. 마라도나의 화려한 커리어
마라도나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축구 재능을 보이며 '신동'이라 불렸습니다. 10대 초반에 아르헨티나 유소년 대표팀에 발탁되었고, 15세에 아르헨티나 1부 리그 클럽인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에서 프로 데뷔를 하며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보카 주니어스로 이적한 마라도나는 뛰어난 기술과 골 감각을 통해 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아르헨티나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마라도나의 유럽 진출은 1982년, 스페인의 명문 클럽인 FC 바르셀로나로 이적하면서 본격화되었습니다. 바르셀로나 시절 그는 환상적인 드리블과 창의적인 플레이로 관중들을 사로잡았지만, 잦은 부상과 구단과의 불화로 인해 2년 만에 팀을 떠나게 됩니다.
그 후 이탈리아의 나폴리에 입단하며 그의 전성기가 시작됩니다. 당시 나폴리는 리그 중하위권에 머무르던 팀이었지만, 마라도나는 혼자서 팀을 이끌며 1986-87 시즌과 1989-90 시즌에 나폴리를 세리에 A 우승으로 이끌며 클럽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를 선사했습니다. 특히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리그 우승 2회, UEFA컵 우승 1회, 코파 이탈리아 우승 1회 등을 이루며 '나폴리의 왕'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대표팀에서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며 최고의 축구 선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터뜨린 두 골은 축구 역사상 가장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2. 마라도나의 기념비적인 경기와 명장면
마라도나의 커리어에서 가장 상징적인 순간은 단연 1986년 월드컵 8강전 잉글랜드전입니다.
이 경기에서 마라도나는 두 골을 터뜨렸는데, 첫 번째 골은 소위 신의 손으로 불리는 논란의 골이었습니다. 당시 마라도나는 손으로 공을 쳐서 골을 넣었지만 심판이 이를 보지 못해 득점이 인정되었고, 이후 마라도나는 인터뷰에서 "그건 신의 손이었다"라고 언급하며 유명한 일화가 되었습니다.
같은 경기에서 터뜨린 두 번째 골은 '세기의 골'로 불립니다. 마라도나는 하프라인에서 공을 잡은 뒤 혼자서 60m 이상을 질주하며 잉글랜드 선수 5명을 제치고 골을 성공시키며 전 세계 축구 팬들을 열광시켰습니다. 이 장면은 지금까지도 FIFA가 선정한 월드컵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골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마라도나는 뛰어난 기술뿐만 아니라 경기 운영 능력과 리더십에서도 탁월했습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에서는 부상과 컨디션 난조 속에서도 아르헨티나를 결승에 올려놓으며 '축구 천재'라는 명성을 입증했습니다.
3. 논란과 사건들
화려한 커리어만큼이나 마라도나는 여러 차례 논란과 사건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의 천재적인 축구 실력과는 별개로 경기장 안팎에서 벌어진 다양한 일들은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안겼으며, 때로는 그의 이미지에 큰 상처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마라도나의 가장 큰 논란 중 하나는 약물 복용 문제였습니다. 1991년, 마라도나는 나폴리에서 활약하던 도중 코카인 복용 혐의로 FIFA로부터 15개월 출장 정지 처분을 받는 큰 징계를 받았습니다. 당시 마라도나는 약물에 의존하며 심각한 중독 증세를 보였고, 이는 그의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치며 커리어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가장 큰 사건은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발생했습니다. 당시 마라도나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핵심 선수로 출전했으며, 대회 초반 그답게 화려한 플레이를 선보이며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조별리그 2차전 후 진행된 도핑 검사에서 에페드린(Ephedrine)이라는 금지 약물이 검출되며 충격을 안겼습니다. 이로 인해 마라도나는 대회 도중 퇴출당했고, 이는 축구 팬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마라도나는 이후 인터뷰에서 "나는 결코 약물을 복용하지 않았으며, 감기약을 잘못 먹었을 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징계는 번복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은 그의 화려한 커리어에 큰 오점으로 남았고, 그가 '비운의 천재'로 불리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약물 문제 외에도 마라도나는 잦은 기행과 논란적인 발언으로 끊임없이 언론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경기장에서 상대 팀 선수들과 신경전을 벌이거나 심판 판정에 과격하게 항의하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었습니다. 특히 마라도나는 1984년 FC 바르셀로나 시절, 아슬레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수에게 강력한 보복성 태클을 가하며 경기장 내 난투극을 벌인 사건이 유명합니다. 이 사건으로 그는 당시 스페인 축구계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히기도 했습니다.
선수 은퇴 후에도 마라도나는 술과 약물 중독 문제로 지속적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습니다. 2000년과 2004년에는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병원에 실려 가며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이 시기를 계기로 그는 쿠바로 건너가 장기간 중독 치료에 집중했으며, 당시 쿠바의 지도자였던 피델 카스트로와의 우정이 깊어진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외에도 마라도나는 정치적 발언과 기행으로 끊임없이 구설에 올랐습니다. 그는 강한 성격과 신념을 앞세워 축구계와 국제 사회의 여러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으며, 이는 많은 팬들로부터 지지를 받기도 했지만, 동시에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 속에서도 마라도나는 축구에 대한 열정과 애정을 잃지 않았습니다. 2008년, 그는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감독으로 부임해 2010년 남아공 월드컵에서 팀을 8강에 진출시키며 지도자로서의 역량을 보여주었습니다. 감독 시절에도 그는 특유의 강렬한 성격을 드러내며 경기 중 격렬하게 선수들을 독려하거나 과격한 언행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만의 열정적인 리더십은 선수들 사이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습니다.
마라도나의 인생은 화려한 성공과 충격적인 논란이 공존한 파란만장한 여정이었습니다. 수많은 논란과 사건들로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지만, 동시에 그는 누구보다 축구를 사랑했던 '축구의 천재'이자 '비운의 스타'로 전 세계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