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첼시 이적 이후 유럽 축구계에서 꾸준한 주목을 받은 카이 하베르츠는 독일 대표팀과 프리미어리그를 오가며 다재다능함을 인정받고 있는 선수다. 그러나 그의 기량을 바라보는 시선은 엇갈린다. 때로는 천재, 때로는 미완의 대기라는 평가 사이에서 그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고 있다. 단순한 공격형 미드필더나 스트라이커 이상의 역할을 수행하는 하베르츠는 전술의 사각지대를 채우는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주는 선수다. 그의 플레이와 성장 과정은 겉으로 보이는 기술 외에도 숨겨진 이야기를 품고 있다.
독일 청소년 시스템의 비밀
카이 하베르츠는 독일 서부의 작은 도시 아헨 근교에서 자랐다. 이 지역은 전통적으로 축구 인프라가 탄탄하지 않지만, 그는 조용히 성장하며 독일 유소년 시스템의 전형적인 성공 사례로 자리 잡았다. 흥미로운 점은 하베르츠가 11세 때부터 전술 이론 수업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독일 유소년 아카데미는 단순한 피지컬과 기술 훈련을 넘어, 어린 선수들에게 포메이션 변화와 공간 활용법을 이론적으로 가르친다. 하베르츠는 이런 시스템 안에서 포지션 전환에 대한 이해도를 키웠다. 실제로 그는 청소년 시절부터 스트라이커, 윙어, 심지어 딥라잉 플레이메이커까지 소화한 기록이 있다. 이러한 다양성은 그가 전술적으로 '애매한 위치'를 자유롭게 소화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하베르츠는 이 시기를 통해 경기장에서 단순히 볼을 다루는 것 이상의 축구를 배웠다고 말한다. 독일식 시스템 안에서 축구를 철학적으로 접근한 몇 안 되는 선수 중 한 명이라 볼 수 있다.
시그니처 무브 없는 다기능성
카이 하베르츠는 ‘자신만의 기술’이라 불릴만한 시그니처 무브가 없다. 네이마르처럼 화려한 드리블도, 홀란드처럼 폭발적인 피니시도 없는 그이지만, 오히려 그 점이 팀 전술에 유리하게 작용한다. 그는 공격 상황에서 스스로 공간을 만드는 법을 안다. 움직임의 방향성과 수비 라인을 흔드는 속도 조절은 그의 가장 큰 강점이다. 어떤 포지션에 배치되든 주변 선수들과의 연계를 통해 결정적인 패스 혹은 세컨드 볼을 유도해낸다. 이러한 플레이는 데이터를 중시하는 현대 전술 분석에서 매우 높게 평가된다. 감독 입장에서는 하베르츠가 전형적인 공격수로 보이지 않아도 상대 수비의 구조를 무너뜨리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하다. 실제로 그는 경기당 평균 위치 변동 폭이 매우 넓은 선수 중 한 명으로 기록된다. 정형화되지 않은 움직임이 오히려 전술의 빈틈을 채우는 기능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그에게는 화려한 하이라이트 대신, 팀 전술의 핵심 포인트가 되는 순간들이 많다.
고양이와 클래식, 집중력의 원천
하베르츠는 경기장 밖에서도 특이한 성향을 가진 선수다. 그는 축구 외의 시간 대부분을 고양이와 보내며, 클래식 음악을 듣는 데에 집중한다. 특히 독일 작곡가 슈베르트를 즐겨 듣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심리적인 안정과 집중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하베르츠는 어릴 때부터 감각 자극에 민감한 편이었고, 경기가 없는 날엔 외부 자극을 철저히 차단하는 습관을 지녔다. 이는 경기장에서의 침착한 성향과 연결된다. 팬들 사이에서는 '무표정한 천재'로 불리지만, 실제로 그는 내면의 흐름을 철저히 조절하는 데 능숙한 타입이다. 이러한 성향은 중요한 경기일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2021년 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도 특유의 침착함으로 결승골을 넣으며 큰 무대에 강한 이미지를 굳혔다. 고양이와 클래식 음악이라는 비일상적인 루틴은 겉으로 보기엔 축구와 무관해 보이지만, 하베르츠에게는 자신의 집중력을 유지하고 외부 압박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방법이다.